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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의 주범 신천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

강점멘토레오 2020. 3. 29. 13:12

우리가 신천지를 특정하고 비난해선 안된다. 신천지와 우리 사이에 선을 긋고, 다른 세계의 사람임을 선언해서 안된다. 신천지가 이단이고, 이들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안다면 그 세계 속의 사람들을 구출하는 초인이 되어야 한다. 그들을 핍박하고, 경계할수록 그들의 불을 더욱 거세게 붙이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해보자. 만약 신천지 교인들이 작정하게 우리에게 작업을 걸었을 때 우리는 거기에 빠지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혹자들은 '나는 절대 그러데 빠지지 않는다'라고 할 것이다. 그런 태도는 신천지 교인들도 갖고 있다.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빠지는 작은 차이는 무엇인지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이야기해보겠다.

 

인간의 부정

우리는 매일 아침 새롭게 태어난다. 어제의 나는 무의식의 심연에 가라 앉히고, 오늘 새로운 내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일상의 반복 속에서 인간은 문득 죽음과 소외, 무의미를 느끼지만 그런 꺼림직한 감정은 모두 무의식에 잠재워버린다. 어제의 나와 같이 말이다.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죽음을 절대적으로 부정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행복과 사랑을 추구하려 들 수록 죽음의 그림자는 더욱 커진다. 진정한 의미로서의 삶은 '죽음'을 고찰할 때 오는 것이지만 그것을 회피하고 부정하는 순간 인간의 병리가 찾아온다는 것이 '실존주의'의 생각이다. 

 

실존주의에도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의 종교는 인간의 불안과 죽음, 무의미를 다루어주는 하나의 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필자의 경우 수 많은 교회를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죽음이 없어지고 영생을 한다는 점, 죄를 회계하면서 하늘나라의 구성원으로 들어왔다는 점 등을 이야기한다. 그 순간 인간이 실존할 수 있는 희소성이자 오직 인간이기에 고뇌할 수 있는 죽음과 소외, 무의미, 자유에 대한 것들은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만다. 

 

그 중에서도 죽음불안이 강한 자, 오직 인간으로서 부여받은 자유에 대한 책임이 막중 해 책임을 회피하는 자, 자신의 무의미를 신에게 간택받았다며 하나님의 자식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자의 경우 신천지의 달콤한 이야기는 절대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내가 신천지에 빠진 교인과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한 이유는 이런 얇은 종이 한 장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문을 벌컥벌컥 열고,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종교인들이 사회에 수 많은 악행을 저지르면서 회계하면 내 죄를 예수가 모두 책임져주고 사해준다고 말하는 것과 신천지 교인들이 자신의 확진 사실을 숨기고 포교활동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물음이 있다. 지금도 집회 금지를 강행하고 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제발 신을 섬기기 전에 내 주위의 사람들을 섬겨보자. 

 

미지생 언지사(未知生 焉知死)

공자는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냐?"고 말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말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은 잘 모시지 않으면서 죽은 사람은 잘 모신다. 성경에는 목을 매면서도 옆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지금 신천지 사람들이 공자의 이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죽음과 자유의지, 책임, 무의미함을 되찾아 오길 바란다. 구약에서 시온을 구한 메시아는 우리 안에 있다. 세상을 구할 전지 전능자는 외세에서 오지 않는다. 불교에서 말한 미륵불은 중생의 내면에 있다고 말한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스스로 자가 격리되는 사람들은 타인의 피해를 막기 위한 책임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용돈 8만 6천 원을 모아 대구에 마스크를 사서 보낸 초등학생 1학년의 모습 속에서 당신들이 그토록 찾는 메시아가 아닌가? 자신의 옆 사람을 섬기지 못하면서 신을 섬긴다는 것은 결코 종교가 바라는 일이 아닐 것이다. 

 

문선종의 실존수업

당신의 인생을 구원할 메시아는 오직 당신입니다. 하지만 그 여정에는 조력자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조력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도 매일 실존을 위한 글을 씁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소행성 B612를 기억하며 오늘도 광활한 사막을 당신과 걷고 싶습니다. / Copyright ⓒ2020 Moon’s Fac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