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역사 속에서 불안은 그림자와도 같다.
오죽했으면 성경에 이런 말이 있을까?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 마태복음 6장 34절
내일의 걱정이 속사포처럼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성현들도 이러 인간의 고뇌를 잘 알기에 실존적 삶을 위해 지금 여기, 바로 오늘을 강조한다. 우리에게도 오늘만 사는 남자가 있었으니...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나는 오늘만 산다" 영화 아저씨에 출연한 원빈의 명대사는 아직도 가슴에 아로 세겨져 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대부분 그 이후의 걱정에 대해서 고민한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그 이후의 상황이 어떻든 간에 상황을 수용하고, 그다음 문제는 그다음에 해결하면 되는 것이라며 태연하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이냐? 어떻게 그런 걱정을 안 할 수가 있느냐? 따지고 든다.
상담을 하다보면 자신의 피해를 부풀리거나 크게 생각하는 망상을 하는 이들을 만난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어!'라고 하는데 이를 고쳐서 말하면 내일 때문에 내 오늘을 망쳤어와 같은 맥락이다. 내일의 걱정 때문에 지금의 내 삶을 망치고 있으면서도 지금 여기를 살려고 하지 않는다. 그 걱정과 불안에 압도당해 자신의 실존을 잃어버린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해라는 지당한 말을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내가 얻는 것보다 내가 잃는 것을 더 생각하기 때문이다. EBS에서 한국 어머니와 미국 어머니 각각 11명을 대상으로 fMRI를 이용하여 뇌 변화를 연구한 결과 놀랍게도 한국인 엄마들은 오로지 상대방과 비교해서 이익일 때만 보상 뇌가 강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며 내가 획득할 수 있는 것보다 내가 잃어버릴 것을 더 집중한다. 내일에 대한 불안과 걱정 속에는 이런 복합적인 타인과의 비교, 내가 잃은 것, 입은 피해가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런 것들을 잔뜩 들고 있으면 낮은 자존감, 좀처럼 튀어 오르지 못하는 회복탄력성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기 때문에 내일 걱정은 오늘 할 필요도 없고, 영영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멘탈의 소유자들은 불안에 덜 압도된다. 그 어떠한 불안도 건강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긍정적이고, 실존적이며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잃는 것보다 무엇을 얻을지를 고민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포커스를 어디에 두느냐는 것이다. '저곳'이 아니라 내가 두발을 딛고 서있는 '이곳'에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온전히 당신의 선택이고, 실존적인 삶을 위한 연습이다.
문작가의 실존수업
당신의 인생을 구원할 메시아는 오직 당신입니다. 하지만 그 여정에는 조력자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조력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도 매일 실존을 위한 글을 씁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소행성 B612를 기억하며 오늘도 광활한 사막을 당신과 걷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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