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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코칭

어린이집 아동학대,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는 군대식 문화

by 강점멘토레오 2019. 11. 20.

최근 대구수성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사건이 발생했다. 담당보육교사는 밥을 먹고 있는 4살 A양에게 다가가더니, 팔을 꺾어 들고 있는 숟가락을 뺏은 것이다. 그리고 먹던 식판까지 가져갔다. 이 보육교사는 여러 친구들 앞에서 하의를 벗긴 채 다니게 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아동은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고 한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 아동이 등원한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MBC는 단독보도를 통해 다문화 아동이라 선생님이 무시했다고 초점을 맞춘다. 피해 아동의 어머니는 해외이주여성으로 “제가 다문화니까... 너무 쉽게 본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정말 다문화 가정이라 이런 일을 겪었을까? 기사는 표면적이 내용만을 보여준채 우리가 다문화가정과 아동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야 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주지만 이 문제의 실체는 우리 모두가 겪는 문제다.

 

문제는 다문화가 아닌 군대식 문화

최근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을 중도에 포기한 몇몇 부모들을 만났다. 대부분 ‘적응’의 문제를 들었는데 사실 아동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은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6개월 정도가 걸린다. 아동이 새로운 환경에서 3개월 정도가 가장 높은 스트레스 수치를 보이는데 이 순간을 잘 적응해야한다. 이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교사다. 교실의 분위기를 만들고, 규칙을 만드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규칙을 만드는데 관여하기 어려워 어린이집, 유치원이 기존에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따라야한다. 이 과정에서 아동의 인권이 무시될 수 있다. 즉, 학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관리해야할 아동이 많다보니 아동들 스스로 규칙을 알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다문화 아동이 원에 온지 6개월이라는 점에서 아직 집에서와 원에서의 역할이 모호해 적응이 어려울 수도 있다. 교사가 위와 같은 행동을 보이는 것은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한 ‘벌’이 되는 것이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학대인 것이다. 군대식 문화라고 보여 진다. 옷이 크면 몸을 키워야하고, 발이 작으면 신발에 발을 맞춰야 하듯 말이다. 이는 학교나 공교육에서도 이와 같이 아동의 다양성, 개별화는 무시된 채로 주먹구구식 집단문화가 우선되는 문화가 대부분이다.

 

 

아동에게 고통 주는 학예회 등 점검필요

부모님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행사들을 한다. 특히 학예회는 아동이 원에서 배운 끼를 무대를 통해 보여주는 부분인데 여기서 아동학대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2018년 11월 11일 한 유치원 교사가 “어린이집 및 유치원 재롱발표회를 없애주세요”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을 올렸다. (아쉽게도 참여 39명으로 그침) 그는 학예회가 “아동학대와 연결되기 쉽습니다”며 청주에서 학예회를 준비하던 교사의 아동학대 사건을 예로 들었다. 교육청에서 방침을 내렸지만 무용지물이라고 고백했다. 행사를 많이 해야 원아모집이 잘 되는 부분도 있어 아동권리에 대한 감수성은 부모들이 더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아이에게 맞는 원을 선택함에 있어서 아동관점의 시스템인지 점검이 필요하다.

 

보육교사 1인당 담당 아동 수 낮춰야

1명의 아동 당 필요한 어른은 최소 2~4명이다. 이 기준은 양육스트레스로 인해 아동에게 정서적 소모를 최소화하고, 건강한 육아를 위해 부모를 포함해 조부모까지 포함해 최소 4명이라 말한 근거다. 그런데 교육현장을 보면 보육교사, 유치원선생님의 고혈을 짜내고 있다. 어떤 가이드라인 없이 지역별로 천차만별이고, 유치원 7세반 선생님의 경우 혼자서 27명을 감당하는 곳도 있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아이를 시스템에 우겨넣는 군대식 문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보육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어린이집, 유치원 아동학대는 계속해서 터질 수밖에 없다. 위 보육교사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딸 아이 둘을 혼자서 보는 나로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힘듦을 느끼는데 더 많은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교사들의 고혈을 짜내는 것과 다름이 없고, 보육의 수월성을 위해 교실의 패턴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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