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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하기

박원순 서울시장의 자살... 그 의미는?

by 강점멘토레오 2020. 7. 13.

- 박원순 시장, 사회적 죽음으로부터의 도피

- 안타까움 죽음에 대한 애도와 피해자에 대한 호소로 양분화

 

 

늘 아침에 일어나 죽음을 생각하는 나로서 누군가의 죽음에 의문을 품는 일은 습관이다. 아직 모든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짐작하건대 박원순 시장이 죽음을 택한 것은 더 이상 긍지를 갖고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그것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 자살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인권과 여성분야에 헌신한 그의 자긍심과 긍지를 더 이상 지키기 어려워서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그의 죽음이 '공소권 없음'으로 마침표를 찍었지만 결국에는 언론을 통해서 그 진위가 가려질 것이다. 그는 그런 긍지를 지키지 못한 까닭에 자발적인 죽음을 선택했다. 

 

박 시장은 82년생 김지영 씨의 삶을 바꾸겠다며 성평등을 위해 노력했고, 여성정책을 조언할 특별보좌관 '젠더 특보' 직위를 신설, 최근 n번방 사건 등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故 최숙현 선수의 죽음에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표한 그였다. 이런 그에게 여비서 성추문은 그의 사회적 지위를 무너뜨리는 칼날과 같다. 앞으로 그의 삶은 더 이상 긍지를 갖고 살 수 없기에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작년 한 중학교에서는 자습시간에 야한 성인물 책을 봤다고 오해를 받은 중학생이 투신했다. 선생님에게 얼차려와 친구들에게 망신을 받은 그는 '살기 싫다', '따돌림당하기 좋은 조건으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무시받았다'는 말을 남기고 투신했다. 자신의 삶이 누추하게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사회적 명예를 지키는 것에서 인간의 죽음은 신체적 죽음과 사회적 죽음으로 양분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런 죽음들은 우리 사회에서 왕왕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각자의 사연에서 삶을 포기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박 시장의 자살이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옳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죽음을 도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2018년 3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2020년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박 시장까지... '지속적인 성추행'은 왜 발생하는 것인가? 아마도 권력이 그들의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권력과 권위가 높을수록 사라들의 고통을 느끼는 공감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을 밝혔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왜 무서운지는 마블에서 만든 히어로물 영화에서 잘 나타난다. 권력에는 그에 합당하는 힘과 책임이 따른다는 메시지는 영화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영웅적인 어떤 능력을 얻을 경우 그 힘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가? 그 권력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면 언젠가 타락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번 일은 여성과 인권을 위해 헌신한 그와 피의자 신분의 그를 철저히 양분화해야한다. 그것이 혼재되어 있기에 갈등이 거세다. 피의자에게 서사를 입히는 것은 언론이 지양해야 할 일이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권력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부디 피해자의 피해가 위로되고 치유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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