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실존멘토 문작가입니다. 실존적인 삶이란 자신을 소멸한 본질적인 삶에서 벗어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자기다움과 삶의 의미를 찾아 '미래가 되어가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 불안의 코어(Core)라고 할 수 있는 죽음과 무의미, 소외, 자유를 넘어 당신의 실존을 깨우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작가의 말-
완벽주의란, 결국 자신을 채찍질 하는 것이다.
K는 무서운 부모에게 자랐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님이 무서웠다. 늘 눈치를 봐야했고, 어릴 적 혼난 기억은 늘 따라다녔다. 그는 상담에서 늘 부모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정서적으로 수용적이 못한 부모님의 성향으로 K는 늘 자신의 마음을 숨겨야 했고, 혼날 것이 두려워 늘 거짓말을 해왔다. 완벽주의가 글의 주제지만 K의 이야기를 꺼낸 건 '죄의식'에 대한 설명을 하고 싶어서다. K는 30대 중반에 나와의 상담을 통해 마음속 깊숙한 곳에 '죄의식'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K는 완벽주의자고, 그로인해 스스로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다.
마음속의 깊숙한 죄의식을 단죄하라
K가 어떤 일을 할 때 '죄의식'이 발동한다. 직장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실행할 때 잘하지 못하면 자신이 비난받을 것을 염려한다. '내가 잘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못 하면 어떻하지?' 라는 생각이 강하다. 이런 죄의식은 K를 채찍질한다. K의 고집은 강하다. 언뜻 보면 자기 소신이 있게 보인다. 하지만 그가 딱딱한 자세의 배경에는 죄의식이 있다. K와 같이 잘못에 대해 혼을 내고, 그에 대한 행동에 죄의식을 심는 부모의 양육태도에 살아온 사람들은 초자아가 강하다. '초자아'는 양심, 도덕과 같은 사회의 잣대 기준이라 할 수 있다. K의 마음속에는 이미 부모가 자리 잡아 있다. 이런 것이 너무 강하다보면 혼자 있을 때도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스스로를 감시하는 것이다. 늘 몸에 건강한 것만 먹으라는 도덕을 가르쳐줬던 부모님인데 술을 마시거나 끼니를 거르거나 할 경우 자신도 모르는 죄의식이 발동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강박으로 발전할 수 있다. '좀 더 잘 해야해'라는 압박감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초자아'가 진정한 나라는 '자아'를 두들겨 패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만약 당신이 완벽주의자라고 느낀다면 타인에게 충고나 비판을 받았을 때 그것을 '비난'으로 여기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렇게 나타나는 행동이 수동 공격행동(Passive Aggression)으로 나타난다. 적극적인 행동이 아니라 타인을 무시하고, 뭔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공격하는 행동을 반복한다. 이런 행동은 자신의 평판을 깎을 수 있고, 자신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 결혼생활에서도 직장생활에서도 이런 수동적 공격성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K는 나의 지인이다. 그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선 수용이 필요했다. 그 무거운 죄책감을 가지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할수록 외롭다. 지금까지 자신을 얼마나 채찍질 해왔을까? 그를 수용하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어릴 적 잘하려고 해도 늘 인정받지 못했다.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다’ ‘너는 더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줄 곧 들으며 자라온 것이다. 어른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더 커져만 갔다. 배척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 소외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온 것이다. 완벽주의는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만들지 못한다면 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단죄의 죄의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 프로그램화된 죄의식을 단죄할 필요가 있었다.
실존적 자아 구출하기
그와 함께 합의한 부분은 나의 자아보다 거대한 초자아를 다스리는 것이다. 지금의 쪼그라든 자아를 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죄의식의 근원과 만나야 했다. 이 부분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K는 아직까지도 부모와 정서적으로 독립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특성상 부모와 애착이 강해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부모로부터 독립이 어렵다. 우스갯소리로 50대가 되어야 독립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부모가 죽어야 가능하다는 소리다. 평소에 연습이 필요하다. 부모가 해주는 충고나 조언은 참고일 뿐 내가 방향을 결정하고,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불쑥불쑥 죄의식을 탑재한 초자아가 등장할 때 그것이 나의 자아보다 크지 않다는 인지 연습을 해준다. 이미지트레이닝도 좋다. 이런 자동적인 프로그램에 새로운 변수를 넣는 것이다. 초자아가 나를 다그칠 때 그것을 인지하는 것 자체로도 상당한 발전이다. 그런 죄의식을 우리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 대신 겁먹게 만든다. 겁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동시에 자아를 강화시켜야 한다. 초자아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 때 거기에 사로잡혀 저항할 수 없다면 직면해야 한다. 이 경우는 싸움도 불사한다. 나의 자아가 당당히 모습을 드러낼 차례다. 나에 대한 의견이나 충고, 조언은 비난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 수용력을 높인다. 아무런 판단 없이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혹자는 자아가 초자아보다 너무나도 커지면 양심과 도덕을 상실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우리의 실존적 자아는 타인과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기에 균형을 맞추는 일 자체가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죄의식으로 스스로에게 벌을 주지 말고, 내가 조금씩 내일 향해 던져져 성장한다는 행복감으로 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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